이건 좀 낯설다.
여행은 점점 멀리 가는데, 왜 마음은 점점 더 돌아오길 원할까?
1️⃣ 예전의 여행: 경험을 탐색하는 모험이었다
한때 여행은 ‘아는 세계 바깥’을 향한 모험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땅, 낯선 언어, 새로운 풍경.
모든 게 나를 자극했고,
모든 만남이 나를 더 크게 만들었다.
“그곳에 내가 가보지 못했기에,
그곳을 다녀온 나는 더 나은 나일 것이다.”
여행은 ‘내 안의 지도를 확장하는 일’이었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고,
마셔보지 못한 술을 마시고,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대화하며.
이때 여행은 결핍의 언어였다.
“내가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게 많아.”
그래서 채우고 싶었다.
🔍 철학적 해석:
여행은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가 말한
**‘일상적 공간의 전복’**이었다.
익숙한 경로가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우연을 만나는 공간.
2️⃣ 그다음, 여행은 ‘인증샷’으로 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행은 경험의 기록이 아니라, 경험의 증명이 되었다.
“여기 왔다는 걸 보여줘야 해.”
“이거 먹었다는 걸 남겨야 해.”
“이 풍경을 담아야 해.”
SNS,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사진과 스토리가 여행의 목표가 됐다.
여행은 ‘경험’을 넘어
‘경험을 증명할 미디어’를 위해 존재하게 됐다.
먹기 전에 사진 찍고,
걷기 전에 찍고,
심지어 즐기기 전에 찍는다.
여행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봐줄 나를 위해 존재하게 됐다.
“저 사람 거기 갔대.”
“나도 거기 가봐야겠어.”
여행의 목적이 ‘내가 모르는 세계’를 향하던 시절에서
‘다른 사람이 아는 장소’를 향하는 시절로 바뀌었다.
🔍 철학적 해석:
푸코(Foucault)는 현대 사회를
**‘보여지는 것의 권력’**이라 했다.
이때 여행은 **“경험하는 나”가 아니라
“보여지는 나”**를 위해 설계된다.
3️⃣ 그리고 이제, 여행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의미 생산 vs 피로 회복
이제 여행은 더 이상 **‘발견’**이나 **‘인증’**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여전히 여행을 통해 의미를 만든다.
-
나는 이곳에서 어떤 나였는가
-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어떤 질문을 얻게 되었는가
여행은 철학이자 치유가 된다.
풍경보다 마음을 보는 여행.
사진보다 기억을 남기는 여행.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행은 단순한 피로 회복의 도구로 축소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쉬고 싶어.”
“그냥 다 내려놓고 싶어.”
“복잡한 건 필요 없어, 그냥 멍 때리고 싶어.”
여행은 일상을 잊기 위한 휴식으로 변했다.
의미를 만들기도 전에,
의미를 느끼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
4️⃣ **여행의 진화는,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나로 있느냐’의 문제로 넘어왔다**
여행은 더 이상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도
어떤 이는 사진만 남기고 돌아오고,
어떤 이는 마음을 두고 돌아온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나는 누구였느냐”가 중요해졌다.
여행은 ‘공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시선으로 그 공간을 바라보는가’에 달린 문제다.
🔍 철학적 해석: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의 의미’**를
‘있는 그곳’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는 방식’**에서 찾았다.
여행 역시 그렇다.
어디를 갔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있었는지가 남는다.
5️⃣ 왜 우리는 여행을 가도 ‘안 돌아온’ 느낌이 들까?
아이러니하다.
비행기를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예쁜 숙소에서 자고,
맛있는 걸 먹었는데.
돌아오면
“잘 다녀왔어?”
“…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느낌.
아무런 변화도 없는 나.
그 이유는
여행이 ‘다른 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진만 남기고,
리뷰만 기록하고,
이벤트만 소비하고,
진짜 **“내 안의 나”**를 마주할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6️⃣ **결국, 여행은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여행의 본질은
“내가 뭘 보았나?”
“내가 뭘 느꼈나?”
가 아니다.
“나는 어떤 질문을 가지고 돌아왔나?”
“나는 무엇을 놓고 돌아왔나?”
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
그게 여행의 역할이다.
여행은 ‘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일’이다.
채워야 비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 결론: 여행의 목적은 장소가 아니라 ‘질문’이다
경험 탐색 → 인증샷 → 의미 생산 or 피로 회복
이 흐름의 끝은 결국
**“내가 어떤 질문을 갖고 돌아오느냐”**에 있다.
-
세상을 더 이해하게 되었는지
-
나를 더 알아가게 되었는지
-
나 아닌 무언가에 더 다가가게 되었는지
그렇다면
여행이란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행은 답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더 많이 가지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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